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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 동문회 100주년 기념사업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을수는 없는가!

이백배 2024. 7. 1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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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 100주년 기념사업

지금 대한민국 돌아가는 꼬락서니와 춘포 동문회 가 어쩌면 그리 같은가!

정부여당 전당대회가 분당대회로 결국은 망(亡) 당 대회로 변신하는 코미디 같은 작금의 사태를!...

윤석열 탄핵을 여당 스스로 앞당기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꼴값들 한다.ㅜㅠ)

검찰총장도 모르게 영부인을 조사하는 판이다.

 

우리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철딱서니 없는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네 잘못이다.

작은 단체라도  장을 잘못 뽑으면 오늘날 이런 사달이 나는 것이다.

윤석열탄핵소추안 143만 명

이백배(40회)

 

우선 오늘의 "춘포동문회 100주년" 사태에 대해서 동문의 한 사람이자  어쩌다 보니 전 재경동문회장으로  모든 동문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사죄를 드린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부친께서 과수원과 고구마밭 이발소  다 팔아서 왜 대장촌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농사 농자도 모르는 사람) 아마 북만주 하늘에 떠돌고 계시는 제 아버님께 문의해 봐야겠다.

나에게 대장촌은 애증의 고향이다.(춘포라고 해야 맞지만 저는 대장촌이 아직도 정감이 가고 포근한 감정이 듭니다. 이해부탁)

 

부잣집도 아니고, 가족 중에 명문학교 나온 사람도 없고 존재감이 거의 없는 그렇고 그런 집안이었다. 그래도 대장촌은 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들이.. 군대 갈 때까지의 추억이 전부지만!..

 

한편으로  대장촌은 나에게 꿈을 키워주었다. 

 

 

버킷리스트

 

 

(이것은 분명히 밝히지만 이백배 자랑이 아니고 논증( 論證) 차원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런 버킷리스트가 있었기에 오늘 이백배가 있었다. 대장촌의 꿈 덕분에  정교수는 아니지만 고려대/연세대에서 강의도 했었다.

대보뚝에서 통기타 들고 띵가 띵가 하던 실력으로  이백배 타이틀로 개인콘서트도 3번 흑자로 진행했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가 이백배 버킷리스트 두 번째였다. 2년 전에 다녀왔다. 비록 도전은 실패했다. 그러나 도전할 때 마음은 죽기로 작정하고 갔었다.

죽기로 작정하고 떠난 안나푸르나 글 보기 아래클릭!

신이 부른다 히말라야

 

존경하는 기라성 같은 선배 후배들이 계셨다. 그중에서 우리 고향의 역사,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가 이어지던 곳, 곡창지대, 일제치하 대장촌은 융성함 그 자체였다.

 

넓은 농장이 있는 최고의 번성된 지역이었다.. 대장이란 이름은 일제 강점기  춘포면 소재지 지명인 대장촌(大場村, 오오바무라)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일본 이름 호소가와 모리 다치는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 직후 조선의 내정을 장악한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 1904년 당시 15만 원을 투자하여 춘포에 호소가와  농장을 짓고 대장촌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2014년 전라선이 개통되면서 대장촌의 지명으로 대장역이 개통되고 일본 봉건세력(사무라이)의 한반도 진출을 위한 시범부락이었다고 한다.

 

이제 폐역이 되었지만, 대장역은(춘포역)  1914년에 지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로 슬레이트를 얹은 박공지붕의 목조 구조 건물이다. 

 

또한, 강점기에 농장에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열린 음악회가 열렸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일본의 호소카와 가문은 1904년부터 조선의 농지를 매입하기 시작했으며 대장촌에 호소카와 농장을 운영했고, 현재 이 건물과 대장정미소, 호소카와 농장 주임관사(김성철가옥) 등이 일부 남아있다. 

 

대장촌의 아픈 역사를 구구절절 나열하는 이유는  슬픈 고향마을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호소가와 자손들 현장취재를 통해 대장촌의 아픔 편린을 통해 후대에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춘포동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진행한 윤춘호 동문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현재 SBS논설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춘포인들은 고향의 역사를 더 잘 알기 위해서 이 책을 한 번씩 읽어보기 권한다.(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구매할 수 있다)

봉인된 역사 (윤춘호)

 

글 쓰는 배경

나는 100주년 행사에 전혀 기여가 없었다.

춘포초교 100주년 사업 첫 회의를 서울역 이백배 사무실에서 가졌다.

 

춘포동문회100주년기념사업첫회의

 

춘포 100주년 사업에 이백배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정해붕 동문을 재경동문회에 영입하게 만든 대단한(?) 큰 몫을 담당했다.

 

당시의 정해붕동문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 다음가는 일정을 소화할 정도로 바쁜 사람이었다. 하여, 작금의 상황을 볼 때  내입장을 전해야 할거 같아서 몇 자 적어본다.

 

팩트체크

누구누구의 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다. 이모 든 것이 내 책임 같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100주년 행사에 대해 언급한 것이  지금부터 딱 1년 전  주제넘게 한 말씀 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 2023.7.25이다.

현직부장판사에게 물어봤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한 가지만 짚고 넘어간다.

춘포초교100주년 기념

단톡에 올라온 세부사항 몆 가지를 보자니 울화통이 터진다. 그래도 조용히 있는 것이 상수라는 생각에 침묵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침묵하는 것은 내 양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추진위에서 기념석표어를 동문들이 직접 참여하는 게 의미 있다 판단하여 취지설명과 공모를 시작하여 그중 12개를 골라 정하였다. 그런데 추진위에 정한 룰을 따르지 않고 본인의 표어를 기념석에 새겨 넣었다(?)

지금은 기념비의 뒷부분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

 

내가 회장이네 하고 자기 이름을 새기려는 눈물겨운 혈투(?) 소리를 듣고!.. 기단에는 자기 이름 새기려고 썼다 지웠다를 네댓 번 했다는 소리를 듣고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가문의 영원히 빚날 기념비에  내 이름과 내문구를 새기는 것이 틀림없이 가문의 영광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러지 않았나  하는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비용은 추진위원장과 회장이 개인변상하라고 했는데 글자 추가라는 명목으로 공금으로 처리했다.

 

그 대단한  회장이 누구인지 나는 잘 모른다. 후배라는 것만 알고 있다. 추진위원장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었는가 이렇게 묻고 싶다.

 

추진 위원장이 정리를 했어야 할 일을 가지고,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면 되지, 그 무슨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건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도 무엇을 잘했다고 고소 고발을 한다. 이건 후안무치도 유분수다. 고소한 사람들 모두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조사실에서 귀싸대기를 처맞을 일이다.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감정을조 절하려 했는데 아!~) 

 

다른 것은 몰라도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을 한 추진위원장 이하 회장이었다고 박수 보내드린다. 장장 1년여를 끌어온 지루한 공방!... 대단들 하다.

정녕!...

루비콘강건너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비통한 심정이다.

 

선배님들에게

 

저는  항상 강의할 때마다 첫 화면 키워드가 바로 이것입니다.(매주 목/일 오후 3시)  인간은 영원하지 않다. 반드시 죽는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존경하는 최만식선배님! 모든 선배님들!

가장 존경받는 선배님들 한분이십니다. 다른 선배님들도 모두 훌륭하시지만 그중 저는 최만식 선배님을 존경했습니다. 이번 100주년 행사에서도 가장 어른이시지요. 어떻게 사태가 이렇게 까지 오도록 방관하십니까?

늘 춘포의 자랑이시고 춘포의 자부심이라고 까지 생각하는 선배님이지요. 뭐가 잘못되었고, 어떤 부분이 잘한 것인지 어른으로써 선배로써 할 수는 없었습니까?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추진위에서 결정된 사항을 지키는 것이 추진위원장 할 일이고 추진위원장이라 자가 잘못하는 것 있으면 따끔히 한 마듸 해야 할 책임이 선배님들 있지 않나요?

정말 실망이고 유감입니다. 아마 춘포동문 선배님들 인생에 최대의 오점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도자

국가고 어느 단체고 지도자를  잘 선택하지 못하면 이런 꼴이 납니다.

윤석열  같은 깜도 안 되는 지도자를 뽑은 국민이 잘못 이듯 작은 조직이라도 동문회장, 추진위원장을 잘못 선택한 모든 동문들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하수종말처리장 밑에서 5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죽음입니다.

(이  주제와 논점이 흐릴 수 있는 예를 하나만 들자면,)

종교 지도자네 하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개 빤스목사 전광훈이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코로나 시절 필자가 하도 화가 나서 공개편지를 썼습니다.

빤스 벗어라 전광훈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보기

 

춘포동문회주권회복

소제목에 춘포동문회 주권회복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현재도 춘포초등학교 재학 중인 후배들을 생각해 보자. 그 아이들이 선배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춘포동문은 이익에 따라 결정하지 말자는 뜻이다.' 신의와 전통을 중시하자. 춘포동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 다 해봤자 2억 ~3억 아닌가!

 

"춘포동문회 100주년 기념사업"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겠는가! 그간의  쓰라린 상처가 춘포동문 모두의 아픔이다.  춘포동문회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선배 후배 모든 동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론: 지금 주고받는 모든 고소 고발을 취하해 주시기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이 취향에 치우치지 말고 춘포 100년 역사에 이번건을 계기로 더 큰 진전사랑우의가 함께 했다고 적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감정조절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춘포동문회100주년기념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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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포동문회 100주년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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