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한 켤레를 바꿔 신었더니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 — 영화 《The Cobb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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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기발한 상상 하나가 사람을 붙잡을 때가 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구두를 신는 순간, 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젊은 사람의 구두를 신으면 젊은 사람이 되고, 부자의 구두를 신으면 부자가 되고, 잘생긴 남자의 구두를 신으면 그 남자의 얼굴을 갖게 된다.

말 그대로 신발만 갈아 신으면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이 설정 때문에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구두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남았다.

“우리는 과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알고 살아가는가?”

2014년 영화 《The Cobbler》는 바로 이 질문을 조금은 엉뚱하고 조금은 따뜻한 판타지로 풀어낸 작품이다.


■ 평생 남의 구두만 고치던 남자

주인공은 맥스 심킨(Max Simkin). 배우 아담 샌들러가 연기한다.

맥스는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서 대대로 내려온 작은 구두 수선점을 운영한다. 그 집안에서 벌써 4대째 이어지는 직업이다.

그런데 맥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신나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매일 아침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의 낡은 구두를 받고, 밑창을 갈고, 바느질을 하고, 다시 손님에게 돌려준다.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생활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오래전 그의 곁을 떠났고 맥스는 늙은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간다.

나는 이런 맥스를 보면서 묘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힘든 것은 꼭 엄청난 불행이 찾아왔을 때만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수십 년 반복되는 것.
어쩌면 그것 역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 지하실에서 발견한 오래된 재봉틀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서 사용하던 현대식 수선 기계가 고장 난다.

맥스는 어쩔 수 없이 지하에 처박혀 있던 집안의 오래된 구두 재봉틀을 꺼낸다.

그리고 손님이 맡긴 구두를 그 기계로 수선한다. 여기까지는 아무 일도 없다.

그런데 맥스가 호기심으로 그 구두를 한번 신어 본다.

거울을 보는 순간, 맥스는 얼어붙는다.

거울 속에 자신이 없었다. 구두 주인이 서 있었다.

구두를 벗으면 다시 맥스로 돌아오고, 다른 구두를 신으면 또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단, 아무 신발이나 되는 것은 아니다. 집안에 내려오는 특별한 재봉틀로 수선한 구두여야 한다.

이제 평생 남의 신발만 고치던 남자가 진짜로 남의 신발을 신고 남의 모습으로 살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영화가 재미있어진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이 구두를 신으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구두를 꺼내 신어보고, 거울을 보고, 밖으로 나가보고 싶을 것이다.

맥스도 마찬가지다. 다른 남자의 얼굴로 거리를 걸어보고, 자신이라면 들어가기 어려웠던 장소에도 들어가 보고, 잘생긴 남자의 모습이 되어 여자들의 시선을 받아보기도 한다.

평범하고 답답했던 한 남자에게 갑자기 수십 개의 인생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까지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가장 가슴에 남는 구두는 아버지의 구두였다

나는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맥스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사라진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맥스에게는 아버지의 구두가 남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

맥스가 아버지의 구두를 신는다. 그리고 어머니 앞에 나타난다.

어머니 눈앞에는 사라졌던 남편의 모습이 서 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어머니와 식사를 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영화의 마법이 처음으로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정말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젊은 사람이나 부자의 얼굴을 갖는 것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단 하루라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 더 큰 기적일지도 모른다.

■ 그런데 옆집 이발사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영화 후반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맥스의 구두가게 옆에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발사 지미가 있다. 배우 스티브 부세미가 연기한다.

처음에는 그냥 옆집 아저씨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그 사람이 왜 맥스 주변에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더스틴 호프먼이 연기하는 아버지 에이브러햄의 이야기와 마법의 재봉틀에 얽힌 집안의 비밀도 연결된다.

결국 이 능력은 어느 날 우연히 생긴 초능력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집안에 내려오던 비밀이었고, 맥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역사의 다음 사람이 된 것이다.

■ 구두는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영화가 왜 하필 구두를 선택했는지도 재미있다.

구두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

좋은 길도 걷고, 진흙길도 걷고, 회사에도 가고, 병원에도 가고, 결혼식에도 가고, 때로는 장례식에도 간다.

사람의 얼굴에는 화장을 할 수 있고 좋은 옷으로 자신을 꾸밀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신은 구두 밑창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걸어왔는지 어느 정도 흔적이 남는다.

그래서 영어에는 이런 유명한 속담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마라.”
(Never judge a man until you've walked a mile in his moccasins)

영화 《The Cobbler》는 이 말을 상상 속에서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 이백배가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

나도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잘 나가는 사람도 만났고, 돈 많은 사람도 만났고, 무대 위에서 박수받는 사람도 봤다.

그러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사람처럼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언제나 그 사람 인생의 일부뿐이다.

좋은 양복을 입었다고 그 사람이 매일 웃는 것도 아니고, 큰 집에 산다고 밤마다 편하게 잠드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낡은 구두를 신고 있다고 그 사람이 초라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람마다 자기만 아는 길이 있다. 그 길을 얼마나 오래 걸어왔는지는 그 사람의 구두를 직접 신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 결국 내가 끝까지 신어야 할 구두

맥스에게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이 생겼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오히려 반대였다.

아무리 많은 사람의 구두를 신어볼 수 있어도 결국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내 구두를 다시 신어야 한다.

젊은 사람의 구두도, 부자의 구두도, 잘생긴 사람의 구두도 결국 벗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내 발이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넘어졌던 길, 다시 일어났던 길, 남들은 모르는 먼 길. 그 모든 길을 걸어온 구두는 결국 하나뿐이다.

남의 구두를 신으면 잠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걸어야 하는 길은
결국 내 구두로 걸어야 한다.

나는 《The Cobbler》를 그렇게 봤다.

겉으로 보면 구두를 갈아 신을 때마다 사람이 변하는 재미있는 판타지 영화다. 하지만 그 구두를 한 켤레씩 벗겨내고 보면 그 안에는 의외로 오래된 질문 하나가 숨어 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인생을 부러워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이제 남의 구두는 그만 쳐다보자.
내 구두가 많이 닳았어도
나는 아직 이 구두를 신고 걸어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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