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 / 2022. 5. 5. 16:49

사자의서 티벳 죽음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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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많은 임사 체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엘고에서 벗어나 육신의 한계를 벗었을 때 경험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신비롭게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었죠.
죽는 순간 황홀한 빛을 만나며
너와 나의 이원성이 사라진 상태 무한한 사랑 자비의 빛과 하나됨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한순간에 전체를 이해하는 전지적 의식 이 모든 것들이 어느 동양의 정신 수련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 갔었던 서양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자의서


티벳 사자에서는 8세기에 쓰여진 책으로 사람이 죽음 즉시 겪게 되는 세계에서 영원한 자유를 얻도록 인도하는 경전입니다.
놀랍게도 그간 임사 체험자들의 이야기와 전혀 상충되지 않는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히말라야 오지에서 몇 세기 동안 비밀리에 전해져 오던 티벨 사자에서 20세기 초가 돼서야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에 의해 번역본으로 세계에 소개되었습니다.

 


과연 아시아 오지에서 전해져 온 이 고대 경전이 인류의 오랜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이 팁의 사자의 서를 소개하며 내용을 살펴보고 다음 영상에서 경전을 직접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티의 사자의 서를 쓴 사람은 파드마 삼바바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8세기에 탄트라 불교를 부탄과 티베트에 전한 인물이며 오늘날 티베트에서 제2의 부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티베트인들은 그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여러 전각과 절에서 그의 불상을 크게 모시고 어떤 곳은 석가모니 부처상보다도 더 크게 모셔져 있기도 합니다.
이는 티베트인들의 삶 속에 직접 들어온 부초로 파드마 삼바바를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기 800년 경에 죽은 파드마 삼가바의 업적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당시 호전적이었던 티베트를 지구상에서 가장 경건한 불교 사회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사자의서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파드마 삼바가는 티베트의 불교를 전파하며 티베트에 있던 악령과 귀신들을 굴복시키고 불교로 개종시켰다고 합니다.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미래를 예언하며 심지어 제자들에게 하늘을 나는 방법까지 가르쳤다고 합니다.


티베트의 라사의 창포강을 역류시키고 금을 모래로 변하게 했다가 다시 금으로 환원시키는 신통력을 고사했다는 신비한 일화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는 중생들을 해탈의 길 대자유에 이르는 길로 안내하기 위해 노력하며 많은 비밀 경전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티벳 사자의 서입니다. 죽음 이후 사자를 해탈의 길로 인도하는 경전이죠.

사자의서


죽음과 유해에 관한 티베트인의 세계관은 티벳사자의 서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자의 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만큼이나 기이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는 티베트의 강상 곳곳에 티베 사자의 서를 비롯해 여러 비장서들을 숨겨놓았는데
108번의 신비한 경전들이 있다고 합니다.


경전이 천기를 누설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경전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죠.
티베트인들이 아직 이 가르침에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으며 내용을 이해 못하고 주술적인 의도로 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자의서 죽음


그리고 교법을 통한 깨달음에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라며 그때까지 경전의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경전들이 600년 이후부터 발견되는데 누구에 의해서 발견될 것이라는 것도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그를 따르던 몇 명의 제자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전수하여 적당한 시기에 다시 육체를 갖고 세상에 환생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제자들은 수백 년 후에 다시 세상에 돌아와 시기가 되었을 때 히말라야의 비밀스러운 동굴에서 경전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들을 티벳 사람들은 테르텐
보물을 찾아내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현재까지 약 65건의 파드마 삼바바의 경전들이 발굴되었습니다.

 

티벳 사자의서


티벳 사자에서는 14세기에 가장 유능한 테르텐 카르마 링파에 의해 티베트 북부 지방에서 처음.
발굴돼 티베트 전역에 전파되며 여러 파본이 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티벳 사자의 서가 서양에 소개된 것은 한 미국인에 의해서입니다.

 


20세기 초 영국 옥스포드 대학 교수였던 에반스 웬츠가 홀로 유럽에서 티벳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이 책을 접하고 직접 1여 년에 걸쳐 승려들과 함께 뜻을 영어로 옮기며 서구 사회에 소개했습니다.
이 비밀 경전을 접한 심리학자 칼륨은 가장 차원 높은 정신 과학이라고 극찬하며 직접 장문의 해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칼륨은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칼융


칼 융뿐만 아니라 대학자들이 동양의 지혜가 담긴 이 책에 열광하며 많은 해설을 남겼습니다.
이 책의 원명은 바르도 태돌 챔모입니다.
이 책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꾸준히 읽혀지고 사랑받고 있습니다.티베 사자에서의 본래 제목의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바르도


바르도는 둘 사이라는 뜻입니다.
낮과 밤 사이 이 세계와 저 세계의 사이란 뜻으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돌 퇴돌은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책 이 책을 읽어드리기 이전에 앞서 심리학자 칼 융의 해설을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분명 보통의 학자가 아닌 인간 중심의 무의식 속에서 큰 진리를 발견했던 대학자였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의 해설은 이 책을 관통한 핵심 메시지를 잘 요약하였습니다.
칼 융은 세계 2차 대전을 미리 예주몽으로 여러 번 꾼 학자로도 유명하죠.
그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수많은 사람들의 심리 분석 작업을 통해 얻은 방대한 경험 자료를 토대로 원시 종족의 심성과 여러 문화권의 신화 민담 동서양의 철학과 사상
종교 현상 등을 비교 고찰하였습니다.

 


20세기 이용은 정신 과학자 중에서 동양 사상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함으로써 동서에 다리를 놓은 학자입니다.
그의 티벳 사자에서에 대한 심리학자의 해설을 이 책에 대한 소개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심리학자의 해설 대자유에 이르는 길 핵심 메시지 네 가지 원 제목이 바르도 태도인 이 티벳 사자의 서는 한마디로 죽음에 대한 지침서이다.이 책은 죽음과 환생 사이에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사자를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이 중간 상태를 티벳에서는 바르도라고 부르며
이 기간은 49일이라고 전해진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1부는 치카이 바르도 제2부는 초인이 바르도 제3부는 시드파 바르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죽음의 실제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에 깊은 통찰력과 깨달음으로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면 마침내 환생으로 인도하는 환영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깨달음의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조잡해지며 환영들은 더욱더 공포스러운 것으로 변한다 이러한 추락은 의식체가 점점 육체적인 환생에 가까워짐에 따라 영원한 자유의 진리로부터는 멀어짐을 말해준다.

 


이 책에서는 사자에게 나타나는 분노의 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의 신들조차 인간 정신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지성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쉽게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들이 생각에 투영물이라는 것은 쉽게 동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동시에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는 현대인들은 매우 어지러움을 느낄 것이다. 티벳 사자에서는 바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이 특별한 책을 관통하며 흐르는 논리는 속 좁은 현대인들처럼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인 대범한 자세이다.

 

 


이런 논리는 현대 철학자들에게는 엉터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모호하지 않고 투명한 것을 편해하기 때문이다.
이들 적대적인 형제들이 다음과 같은 티벳 사자의 서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들 마음에 텅 빈 충만이 곧 불성임을 인식하고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그들 자신의 생각임을 안다면
그대는 성스러운 부따의 경지에 머물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믿음은 우리의 현대 철학과 신학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티벳 사자에서는 가장 차원 높은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철학과 신학이란 아직도 중세 시대적인 심리학 이전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단지 주장을 하고 설명을 하고 방어하고 비평하며 논쟁하는 게 고작일 뿐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그 마음 자체에 대해서는 토론의 대상에서 제외시킨다 이것이 모두의 은밀한 합의사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는 모든 주장은 그의 마음의 표현이다.
현대인은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단지 심리적인 현상에 관한 것이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혼이란 실로 하찮고 무가치하고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덤으로 주어진 어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이라는 단어를 기피하고 그 대신 정신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힘이 내재해 있다. 그 힘은 바로 창조의 힘이다. 이 힘을 통해서 영혼한 생각들을 창조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에 의해서 영혼들은 서로 차이를 갖게 된다.
결국 생각은 모든 존재를 결정하는 조건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존재 자체이기도 하다 티벳 사자의 선은 바로 이 위대한 심리학적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고귀하게 태어난 아무개여 들으라 이제 그대는 순수한 존재의 근원에서 비치는 투명한 빛을 경험하고 있다.
그것을 들으라 고귀하게 태어난 자여 그대의 현재의 마음이 곧 존재의 근원이며 완전한 선이다.
그것은 본래 텅 빈 것이고 모습도 없고 색깔도 없는 것이다. 그들 자신의 마음이 곧 참된 의식이며 완전한 선을 지닌 부따이다.

 


그것은 텅빈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빈이 아니라 아무런 걸림이 없고 스스로 빛나며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텅 빕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법신의 상태이며 완전한 깨달음이다 텅 빈 공은 모든 생각과 모든 설명을 초월한 경지이다.
하지만 그것은 낱낱의 사물들로 모습을 나타낼 만큼 생명력으로 충만한 것이며 그 텅 빈 충만이 인간의 영혼 속에 깃들어 있다. 경전은 이어진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바로 영원히 변치 않는 빛 아미타바이다.

 


그대의 마음은 본래 텅 빈 것이고 스스로 빛나며 저 큰 빛의 몸으로부터 떨어질 수 그것은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는 것이다. 티베 사자에서는 죽은 사람에게 최고의 궁극적인 진리를 설명해 준다 그 진리란 신들조차도 우리들 자신의 영혼에서 비치는 빛이고 우리들 영혼에서 투영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동양인에게는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 빛을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마치 자신의 하나님을 빼앗겨버린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의 영혼이 곧 하나님의 빛이고 하나님이 곧 그의 영혼이다.
동양의 이런 역사를 불행한 안젤루스 실레시우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심리학적으로 시대를 훨씬 앞선 인물이었다.
안젤루스 실레시우스는 17세기 유럽의 신비주의 시인으로 많은 종교적인 박해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바닥 없는 바다 존재의 궁극적인 모습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불변의 법칙 등으로 묘사했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비춰져 있다고 했다.
그는 302편의 시가 실린 시집 천사의 방랑을 남겼다.

 

 


티의 사자의 사는 사자에게 분명하게 밝혀준다 영혼 다시 말해 인간의 마음이 모든 것의 근원 자리임을 이는 매우 사려 깊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분명히 해주지 않는 하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밀쳐대고 억누르는 수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누구에 의해서 주어진 것인지 궁금해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사자는 바로 이 주어진 것들의 세계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티베 사자에서의 목적도 이런 자유의 길로 그를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 자신을 사자의 입장에 둔다면 우리는 티벳 사자의 서로부터 결코 적지 않은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 첫 문장부터 모든 주어진 것들을 주는 자가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창조해낸 장본인이고 모든 결정을 내린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사실 내가 모든 것들을 일어나게 했다고 믿는 것보다 모든 것들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직접적이고 더 확신이 가는 것이다.

 


인간이 가진 동물적 본능은 환경의 창조자로서 자신을 보기를 거부하게 만든다 그래서 신비 세계의 임문식에서는 늘 관점의 대전환을 시도하는 상징적인 죽음을 거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산 자의 인문식에 있어서 초월이란 죽음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사고의 관점에 대해 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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